‘ARM 인수’ 엔비디아, 반도체 생태계 지킬까 교란할까

2020.09.14 16: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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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체 업계, 기대와 우려 공존…주요국 승인 남아

[디지털데일리 김도현기자] 엔비디아의 ARM 인수 소식이 전해지면서, 업계 반응이 엇갈린다. 양사 간 시너지 기대와 시장 생태계 교란 우려다. 부정 요소를 최소화하지 않으면, 주요국 승인 단계에서 막힐 가능성이 크다. 엔비디아는 공공의 이익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13일(현지시각) 미국 엔비디아는 400억달러(약 47조3520억원)에 영국 ARM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각각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반도체 설계(팹리스) 분야 1위 업체로, 힘을 합칠 시 파급력이 클 전망이다.

엔비디아는 지난 7월부터 ARM을 보유한 일본 소프트뱅크그룹(SBG)와 협상을 진행했다. 이번 계약은 사업 다각화를 노리는 엔비디아와 현금 확보가 시급한 SBG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엔비디아는 왜 ARM을 품었나?=엔비디아는 50조원에 가까운 돈을 투입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데이터센터와 게임 시장 성장으로 큰 수익을 냈지만, 적지 않은 금액이다. ARM의 지난해 매출이 19억달러(약 2조2500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대규모 투자를 강행한 이유로는 미래 먹거리 발굴 차원이다.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하는 시점에서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엔비디아는 주력이 GPU다. 과거 역할이 그래픽 부문에 집중돼 존재감이 적었지만, 동시에 여러 계산이 가능한 ‘병렬식 연산’ 특징이 주목받으면서 서버 등의 속도를 높이는 반도체로 거듭났다. 이를 계기로 엔비디아는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ARM 가진 설계 기술과의 시너지가 기대된다. ARM은 전력관리반도체(PMIC) 등을 개발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다. 이를 기반으로 모바일 시장에 진출했고, 현재 대다수 스마트폰(95%)과 태블릿PC(85%)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설계를 담당하고 있다. 양사가 손을 잡으면 서버와 모바일 시장을 동시에 장악하게 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엔비디아의 AI 및 그래픽 기술이 ARM의 지적재산(IP)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는 ARM 아키텍처에 AI 가속이 필요한 명령어셋과 텐서 코어 등을 투입할 예정이다. 고객사에 한층 개선된 IP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ARM은 자체 아키텍처가 ‘오픈 소스’임을 강조해왔다. 기존 설계 기술에 엔비디아 IP가 적용될 시 중소 업체의 AI 반도체 개발이 수월해져 생태계 구축에도 도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모바일 분야 협업도 예상된다. AP에는 중앙처리장치(CPU), GPU, 통신 칩 등 여러 반도체가 탑재된다. 엔비디아는 유독 모바일 시장에서는 약세를 보였고, ARM의 그래픽 IP ‘말리’는 퀄컴 아드레노 등 대비 성능에서 밀린다. 그래픽 최강자 엔비디아의 존재는 ARM의 경쟁력을 높여줄 카드다.

서버 부문 역시 여파가 클 것으로 보인다. 현재 관련 시장은 인텔(CPU)과 엔비디아(GPU)가 양분하고 있다. 인텔은 x86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서버용 CPU 시장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경쟁사 AMD마저 같은 아키텍처를 쓸 정도로, 독점 체제다. ARM은 유일한 대항마로 꼽힌다. 아마존웹서비스(AWS) 등이 ARM 아키텍처 기반 자체 칩을 개발했다. 인텔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의지다. 데이터센터 업계 1위가 움직이자 경쟁사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도 동참하는 분위기다.

인텔은 단일 응용프로그래밍인터페이스(One API)를 추구하고 있다. CPU와 AI 가속기 통합을 위함이다. GPU로 AI 가속기 시장을 석권한 엔비디아에 대한 선전포고다. 엔비디아는 ARM 인수로 인텔에 견제구를 던질 수 있게 됐다. 서버 전쟁은 각개전투에서 ‘인텔 vs 엔비디아·ARM’ 구도로 전환한다.

◆반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엔비디아와 ARM의 합병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엔비디아는 ARM의 고객사와 경쟁사다. ARM은 퀄컴, 애플, 삼성전자, 미디어텍 등과 거래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엔비디아가 기존 생태계를 무너뜨릴 것을 걱정한다. 엔비디아가 고객사이자 경쟁사에 ‘갑질’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영향권이다. 삼성전자의 시스템LSI 사업부는 ARM의 IP를 활용하고, 파운드리 사업부는 엔비디아의 GPU를 위탁 생산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엔비디아가 IP 수수료는 올리고, GPU 생산비는 내리는 그림이다. 엔비디아와 삼성전자는 지난 2014년 특허 분쟁을 펼치기도 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가 ARM의 설계도를 공유하지 않고 독점하거나, 라이선스 비용을 대폭 높일 가능성이 있다”며 “투자한 만큼 이익을 내야 하는 것이 기업인 만큼,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영국 본사의 엔지니어를 미국 본사로 데려가 활용한다는 소문도 있다.

엔비디아는 이러한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젠슨 황 CEO는 “ARM의 비즈니스 모델은 훌륭하다. 개방형 라이선스 모델과 고객 중립성을 유지할 것”이라며 “본사는 영국 케임브리지에 남을 것이며, 영국 내 투자도 이어갈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엔비디아와 SBG는 최종 계약을 체결했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다. 미국, 영국, 중국, 유럽연합(EU) 등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공식 승인까지는 18개월이 소요될 전망이다.

미·중 무역분쟁, 영국의 반발 등이 변수다. 미국과 기술 전쟁에 돌입한 중국이 엔비디아의 인수 관련 반독점 심사에서 이를 거부할 수도 있다. ARM 본사를 둔 영국에서는 일자리 축소 우려 등으로 ARM 매각에 부정적이다.

<김도현 기자>dobest@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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